빠른이혼 [플랫한 티타임]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누비는 ‘구르님’의 의심 없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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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행 중 일부는 지난 6월 출간한 저서 <의심 없는 마음>(푸른숲)에 담겼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1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김지우 작가와 만나 책에는 들어가지 않은 에피소드를 들었다. 사실 기자와 김지우 작가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22년 첫 인터뷰 당시 “다른 나라가 궁금하다”, “교환학생을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 ‘진짜 다녀온 후’의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다. 그가 3년간 부지런히 굴러다니며 길어온 여행기는 장애인 크리에이터로서만이 아닌 20대 여성의 성장기이기도 했다.
김지우 작가는 18살까지 혼자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베트남, 홍콩·마카오 같은 여행지는 가족과 함께 다녀왔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또는 홀로 해외 경험을 할 기회는 대학에서 찾아왔다. 국제기구 탐방 프로그램·교환학생 지원이 열렸고 그가 손을 들었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가겠다는 사람이) 없었을 것 같아서 선례를 굳이 찾아보지는 않았다. 안 뽑을 수 있겠단 생각은 했는데 내가 가서 못 할 것이라는 생각은 없었다”고 돌아봤다.
최종 선발되며 프랑스, 스위스, 독일을 여행할 기회가 찾아왔다. 앞의 두 국가에서는 애인이 동반했고 독일에서는 엄마가 함께했다. 평소 쓰던 수전동 휠체어가 아닌 업체에서 제공하는 전동 휠체어를 빌려 썼다. 김지우 작가는 “유럽이 워낙 돌바닥이 많다고 들어서 앞바퀴가 큰 휠체어를 구했다. 내 경우엔 마케팅 차원에서 협찬을 받았지만, 요즘은 ‘휠셰어’라고 인천국제공항에서 (항공기 반입이 가능한) 휠체어를 빌려주는 서비스가 있다”고 말했다.
200㎏ 넘는 휠체어와 함께 기차, 버스, 트램 등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여행 난이도는 나라마다 편차가 있었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미리 신청한 이동 보조 서비스가 누락되거나 환승 열차를 놓칠 뻔한 일도 생겼다. 오래된 파리 지하철은 애초에 이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출구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결국 세 칸 계단을 ‘날아서’ 우당탕 내려간 일도 있었다. 주변에서 내민 도움의 손길이 아니었다면 그 자신과 애인의 힘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김지우 작가는 “교외에 숙소를 잡았던 것부터 실수였다. (이동지원 서비스를) 신청하려면 24시간 전에 전화로만 가능했는데, 콜센터 연결도 1시간이 걸리고 서로 제2외국어인 영어로 소통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접근성이란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갈 수 있게 하는 것, 미리 알아봐야 하는 에너지를 줄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사람들이 와서 도와주려고 했다. 일련의 우당탕탕도 재밌었고 사람들의 친절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산악지형인데다 대중교통의 종류도 곤돌라, 푸니쿨라 등으로 다양한 스위스는 오히려 접근성이 좋은 곳이었다. 그는 “오만 곳에 휠체어 표시가 있고, 자연스럽게 휠체어를 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내 존재에 안정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융프라우에도 미리 전화를 해 ‘내가 여기에 가고 싶은데 괜찮을까’ 했더니 ‘노 프라블럼’이라고 하더라. 갔더니 진짜로 문제가 없었다. 모든 곤돌라 좌석이 접혀서 오는 대로 타기만 하면 됐다”며 “미리 알아보지 않아도 남들과 똑같이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고 했다.
융프라우에서 ‘인증샷’을 찍는 눈 언덕까지는 가지 못했다. 휠체어 바퀴가 미끄러질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 깜짝 선물이 찾아왔다. 애인을 기다리고 있던 김지우 작가에게 한 직원이 다가와 휠체어를 직접 밀며 아이스 팰리스(전망대 코스)로 안내한 것이다.
김지우 작가는 “장애를 가지고 살면서 자의든 타의든 나도 모르게 뒤로 빼는 순간이 있다. 위험해서 안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과 여기까지는 안 해도 된다는 마음 때문에 나는 늘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며 “그는 나와 초면이었고 그렇게 안 해도 되는 사람이었는데 ‘뭐 어때, 가보자’ 해서 함께 얼음 위를 가는 경험이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 교환학생으로 간 호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에서 그는 보호자나 동반자 없이 진정으로 혼자가 됐다. 서핑데이를 신청하면서도, 수영복을 챙겨 입으면서도, 정작 서핑만큼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그었던 선이 파도 위에서 깨졌다. 그가 찍은 영상에서 호주 서핑 강사의 표정은 정말 이렇다. ‘너는 뭐 그런 걸 묻니?’
김지우 작가의 말이다. “나는 항상 단체 활동에서 어쩔 수 없이 빠졌던 학생이었다. 수련회에 짚라인이 있었는데 매달려서 내려가는 것이니 괜찮을 것 같은데도 위험하니까 안 된다고 제지당한 적이 있었다. 그런 순간이 많았다. 단체로 배를 타야 하는데 휠체어는 못 타니까 버스에서 3시간 동안 혼자 있는다거나. 그래서 그 때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다 휠체어가 있다고 하니 해변까지는 갈 수 있겠다, 거기서 돗자리에 앉혀달라고 하면 되겠다”는 것이 애초 그의 생각이었다.하지만 강사는 아무렇지 않게 스윔수트를 내밀었다. 강사는 “너 하고 싶은 거 아니야? 우리 장비도 다 있어”라고 말했다. “너 괜찮겠어?”라고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를 전담해 줄 강사가 다가왔고, 양쪽으로 손잡이가 더 많이 달린 서핑보드도 준비됐다.
김지우 작가는 “항상 모든 사람이 ‘쟤는 안 할 거야’라고 생각할 때 ‘나 할 수 있어요’라고 주장해야 했는데, 그곳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당연히 도전하게 됐다. 누구도 나를 ‘안 할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순간이 좋았다”고 말했다. ‘의심 없는 마음’은 그렇게 찾아왔다.
서핑을 마치고 나서도 역시 누구도 그에게 ‘대단하다’ 류의 말을 하지 않았다. 김지우 작가는 “오히려 나는 ‘네가 그런 것까지 해내다니 진짜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얘는 못 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으니까 대단해 보이는 것이다. 그런 의미화가 전혀 없었던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진짜 할 수 있을지 몰랐다고 얘기했는데 그런 벅찬 감정도 잘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았다. 원래 그런 것이니까”라고 돌아봤다.
생애 첫 서핑의 소감은 어땠을까. 김 작가는 “휠체어에 타고 있으면 숨이 찰 정도로 뭔가를 해보거나 아드레날린이 나올 일이 없다. 그 스피드와 온몸의 진동, 물살이 생경했고 활주하는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의 여행기에는 ‘웃긴데 웃으면 안 되는 것 같은’ 대목도 있다. ‘아시아인 여자여도 장애인에게는 캣 콜링(길거리에서 낯선 여성에게 성희롱성 추파를 던지는 행위) 안 하더라’ 같은 것들이다. 아시아인에 여성, 장애인이라는 교차성을 촘촘히 안고 여행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여행 중 점원에게 무시당하거나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는 경험은 피하지 못했지만, 캣콜링만큼은 덜 당했다고 그는 말했다.
김지우 작가는 “여성이 아니라 일단 장애가 먼저 보였을 것이다. 스위스에서 ‘뷰티풀 레이디!’하는 캣콜링을 한번 들었는데 ‘저 아저씨 진짜 편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웃었다. 그는 “(한국에서도) 일상에서 가벼운 미세차별을 겪다 보니 차별에 대한 역치가 높은 편이라 그런 감각을 덜 하는 것 같다”며 “애초에 편입될 수도 없는, 다들 다르게 생긴 곳에서 훨씬 소속감을 느끼는 때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내가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나라마다 어떻게 다른지”를 체험하는 것이 그가 찾은 해외여행의 재미다. 교환학생으로 간 미국에서 ‘장애’를 가진 ‘외국인’ 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영상물만으로 평가를 받았던 경험도 소중하게 남았다. 김지우 작가는 “어릴 때부터 ‘힘든 환경인데도 참 열심히 한다’는 칭찬을 받다 보니 내 능력과 배경이 분리가 안 됐다. 특이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닌 내가 만든 것으로만 평가를 받고 싶다는 욕구가 항상 있었다”며 “교수님의 피드백에는 내 배경에 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얘기하는 사람을 처음 봤다”고 돌아봤다.
김지우 작가가 말하는 해외여행 ‘꿀팁’은 다름 아닌 ‘도움 요청’이었다. 책에는 ‘도움 요청 아티스트’라는 밈으로 재치있게 표현돼 있지만 사실 관점 전환이 담긴 말이다. 도와달라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남을 도우면서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는 단순한 진리도 있다. 그는 도와달라고 하면 거리낌없이 손을 보태고 소리없이 헤어졌던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 말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는 “도움을 요청하고 받고 하다 보니 ‘아 이게 별일이 아니구나, 다른 사람도 날 도울 때 기분이 좋을 수 있겠다’ 싶었다. 당연히 받으라는 건 아니지만 너무 미안해할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동시에 나도 사람들을 살피고 먼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을 돕게 됐다. 여행에서 그런 사람들이 고마웠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플랫]두 발로 가면, 두 바퀴로도 갈 수 있어야죠…휠체어로 여행하는 이유
그는 “내게도 ‘민폐니까 나오지 말라’는 댓글이 달리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김 작가는 “그 사람은 지금은 자기가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언젠가 분명히 그럴 수 없는 순간이 올 텐데, 그때 얼마나 자기를 못 견딜까 싶다”며 “도움을 받아 본 사람이라면 다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것도 알 것”이라고 말했다.
구르님의 여행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김지우 작가는 “여행은 개고생하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장애인 인프라가 잘 돼 있지 않은 국가들도 가보고 싶고 운전을 해서 국내여행도 많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를 느낄 일이 별로 없는데 여행에선 자기효능감이 오른다. (장애가 없어도) 몸을 사리는 자신을 발견하는 이들에게 훌훌 떠나는 마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는 조금 특별한 ‘공부방’이 있다. 세곡동에 사는 20명의 중·고등학생들은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세곡동주민센터를 찾아 1대1 과외를 받는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 소속 장병들이다.
‘세곡청소년공부방’이 문을 연 지도 올해로 14년차에 접어들었다. 2012년 처음 문을 열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
공부방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오왕근 세곡나눔장학회 회장(72)은 국내 1위 타카제조업체의 대표이기도 하다. 지난 21일 경기도 광주 공장 사무실에서 만난 오 회장은 이날도 회사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장모님이 불교신자인데 매번 기독병원에 시각장애인 치료비 후원을 하셨습니다. 본인 환갑·칠순 때도 ‘밥 한끼 먹고 치울 걸 뭐하러 돈을 쓰느냐’며 잔치에 쓸 돈을 전부 시각장애인 단체에 기부하셨어요.”
장모님은 지난 2012년에 93세로 별세했다. 장례를 치르고 나니 약 3000만원이 남았다. 때마침 장학회를 넘겨받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아내가 ‘엄마가 남겨놓고 가신 돈이니, 이 돈으로 장학회를 본격적으로 꾸려봐라’라고 제안했습니다. 장모님이 남겨주신 돈이 장학회의 종잣돈이 된 거죠.”
장학회는 제일 먼저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었다. 기왕 운영한다면 제대로 된 학습지원을 하고 싶었다. 오 회장은 당시 세곡동에 있는 공군부대(제15특수임무비행단)를 찾아가 ‘여기 입대하는 장병들은 대부분 우리나라 최고 대학 재학생들 아니냐. 돈이 없어 학원을 못 다니는 아이들에게 재능기부를 해주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했다. 장소는 세곡동주민센터 강당을 제공받았다.
세곡동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한부모가정, 조손가정,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공부방에 모였다. 매주 1회 2시간씩 공군장병들로부터 영어, 수학 등 1대 1과외를 받았다. 장병들은 단순한 과외교사를 넘어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자처했다.
장학회는 아이들의 학습교재를 비롯해 공부하며 함께 나눠먹을 빵과 우유 등 간식도 지원한다. 여태껏 오 회장은 단 한 번도 공부방을 공식방문한 적이 없다. 그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가볼 수도 없고, 가끔 밖에서 슬쩍 들여다보고 돌아올 뿐 아이들과 마주치지 않는다. 괜한 부담을 줘서 뭐하겠나”라고 말했다.
장학회의 활동은 공부방 운영에 그치지 않는다. 대치동의 유명 대입 컨설팅 업체와 협약을 맺고 매년 공부방 학생들을 상대로 ‘찾아가는 입시 컨설팅’도 진행하고 있다. 회당 50만~100만원에 달하는 고액 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한다.
“이 동네가 조손가정, 다문화가정도 많다보니 아이들이 입시정보에 밝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어머니가 한국말에 능통하지 못하거나 하면 아이를 위해 입시정보를 찾아보고 싶어도 쉽지 않죠.”
평소 맞벌이 등으로 바쁜 부모들도 입시컨설팅 날만큼은 꼭 아이와 함께 설명을 듣고 간다. 오 회장은 “어쩌면 공부방보다 더 인기가 많은 사업 같기도 하다”며 웃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매년 장학금도 지급한다. 고등학생에게는 100만원을, 대학생은 200만원을 준다. “신청서를 받습니다. 내 꿈을 실현하는 데 그 돈이 어떻게 쓰일 것인지 일종의 계획서를 쓰는 거죠.”
지난 2015년 14명을 시작으로, 매년 많게는 68명의 세곡동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는다. 올해 42명을 포함해 지난 11년간 총 273명의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회는 서울대 캠퍼스 방문을 비롯해 1박2일 역사·문화체험 여행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장학회를 함께 꾸려가는 회원은 약 120명이다. 회원 대부분이 세곡동 주민이자 오 회장의 지인들이다. 회비는 각자 사정에 따라 알아서 낸다. 모자라거나 부족한 비용이 있으면 오 회장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다. 오 회장은 그러나 “세곡동 주민들이 이 아이들을 함께 돌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로 감사인사를 전하는 학생들도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지난 13년간 누구로부터도 감사인사나 편지 등을 받아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굳이 인사를 받나요. 그저 공부방을 거쳐간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이 받은 것처럼 베풀 줄 아는 어른이 된다면 그걸로 족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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